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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에세이

직업의 귀천 :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by Universe7 2020. 11. 2.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며칠 전 아파트 경비실에서 소화기를 나눠준다는 말을 듣고 퇴근길에 경비실을 들렀다. 어떤 한 아주머니가 팔짱을 끼고 그 앞에 서있었다. 경비실 문 앞으로 다가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소화기 찾으러 왔어?”

“네, 경비실에서 배부한다고 해서요”

“이제 5분에서 10분만 있으면 올 거야 조금 기다려봐”

이렇게 짧은 대화가 끝나고 5분 정도가 흘렀을까.

 

대뜸 아주머니가 전화를 걸더니 다짜고짜 화를 냈다.

“아니, 금방 온다면서 사람을 얼마나 기다리게 하는 거예요? 여기 다른 사람도 한 명 같이 기다리고 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저녁을 먹고 있던 경비원 분이 달려왔다.

"법으로 지정된 휴게 시간이라고 전화로 말씀드렸잖습니까."

아주머니는 질세라 전에는 그런 거 상관없이 해주지 않았냐고 언성 높여 말했다.

 

나는 소화기를 찾고 그 경비실을 빠져나왔다. 그때의 기분을 솔직히 표현하자면 기분이 더러웠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곳에서 경비원분들에 대한, 다른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생각나면서 화가 났다.

요전에 근무하시던 경비원 분은 자신들의 휴게시간까지 줄여가면서 아파트 주민들에게 호의를, 편의를 베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쌓여 시간이 지나다 보니, 당연한 권리인 양 그것을 강요하는 그 상황이 정말 안타까웠다.

 

 

직업의 귀천은 없을까?

*글을 쓰기에 앞서 이 글들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며, 다른 견해를 가지고 계신 모든 분들을 존중합니다!

 

위의 일을 겪고 직업의 귀천으로까지 생각이 자연스레 이어졌다. 동시에 직업에 귀천이 어디에 있냐며 말로만 떠들었던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 또한 그런 차별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무의식적으로,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학교 수업시간, 혹은 우리가 커가면서 "직업에 대해서 귀하고 천한 것은 없다"라고 배운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게 될수록, 나이가 들수록 그것은 거짓이라 느낄 때가 있다. (바로 위의 이야기만 해도 그렇다.)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본다면 난, 직업의 귀천이 '지금까지'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5성급 호텔에서 일을 하고 있는 A요리사와 동네에서 일반 음식점을 하는 B요리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두 요리사 모두 같은 종류의 직업을 가지고 있고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두 요리사는 격이 다르다고 느낀다. 두 요리사는 같은 종류의 일을 하면서도 대우와 급여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귀천, 귀하고 천한 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흔히 육체적인 노동으로 하는 직업을 가진 택배기사, 청소부, 공장 인부 등 그런 분들의 직업 자체를 마음속으로 은근히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문제는 절대 간단하다고 말할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자리잡고 있는 사회적 인식들과 더불어 무한경쟁,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거의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정말 안타깝다. 이 문제들을 근본적으로는 해결할 수는 없지만 완화시킬 방법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돈, 사회적 지위, 직업 등을 생각하지 않고 모두 같은 '사람'으로서 그들을 배려하자는 것이다.

 

한편, 다른 곳에서는 이런 의견도 있다. 직업이 아닌 '사람'에 귀천이 있다고. 그래, 단편적으로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사람'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무엇이며 그것은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이 사람들을 대하는 데에 있어 저질스러운, 나쁜 행동을 했다고 해도 우리들은 그들을 평가할 자격이 없다. 그들의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무작정 '동정'하기 위해, 누구를 깎아내리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다.

위의 이야기를 겪은 사람으로서, 서비스 직종에서 잠시나마 일해본 사람의 입장에서 한 번쯤은 이런 주제에 대해서 다뤄보고 싶었다. 아직 나의 글솜씨가 부족해서 이렇게 밖에 정리를 못한다는 것이 많이 아쉽기도 하다. 조금이나마 이 각박한 세상에서 서로가 인사를 건네며, 웃음을 지으며 지내는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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