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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유리병 속의 벼룩 : 여행의 시작

by Universe7 2020. 10. 4.

유리병 속의 벼룩

1m를 뛰어오르는 벼룩을 잡아 그보다 낮은 30cm 정도의 유리병에 가두었다.
벼룩은 처음에 그 병에 계속 부딪혔다. 하지만 시도가 계속될수록 벼룩은 시도, 도전하기를 그만두었다.
시간이 지나고 유리병을 열자 벼룩은 그 이후로도 유리병 높이 이상으로 뛰지 못했다.

위의 '유리병에 갇힌 벼룩'에 관한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삶의 한 순간에는 이 '벼룩'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나는 이것보다 더 나은 존재이지만 그것을 자각하지 못할 때, 혹은 새로운 것을 도전하기 두려울 때.

 

첫 에세이로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내가 어떤 계기로 해외여행을 시작하게 되었고 완전히 빠지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정신없이 대학교를 다니고 있을 5월, 쉬는 시간에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필리핀으로 해외봉사를 가보지 않겠느냐고 뜬금없이 권유를 받았다. 기간은 당장 내일까지라고 말하며 통화는 짧게 끝났다. 그 전화를 받고 예기치 못한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해외 봉사를 가보고 싶다고 생각을 계속해왔지만 기회가 없던, 나에겐 꿈같은 일이었다. 고민한 겨를 없이 가겠노라고. 잘 부탁드린다고 연락을 했다. 그렇게 내 첫 번째 해외봉사이자 여행이 시작됐다.

 

01

마음속의 뜨거운 것

인천공항을 거쳐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 도착했다.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풍경들과 낯선 문화들. 모든 것이 새로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위의 사진이 도착해 저녁을 먹기 전에 식당에서 본 항구인데 정말 넋을 잃고 쳐다보고 있었다. 동시에 나는 왜 이제야 외국으로 나온 것인지, 그 좁은 한국 그리고 한국에서도 작은 시골에 묶여있었던 것이 한심하다고 까지 생각이 들었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뒤로하고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서 보다 더 깊게 박혀 잊히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그 부둣가에서 마주친 아이들이다. 내 허리까지도 키가 자라지 않은 아이들이 다가와 내 손을 붙잡고 팔과 다리에 매달리고 꽃 좀 사달라며 계속 따라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당시에 현지인 가이드와 함께 했는데 꽃은 사지 말라고 하며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한 남자를 찾더니 "그 꽃을 사봤자 저 사람에게 돈이 간다"라고 설명해주었다. 그 장면은 저녁을 먹고 나오며 실제로 보기도 했다.

 

마음속에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쓸데없는 동정심이었을까 혹은 반항심과 분노였을까.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그저 수긍하고 그 시간과 장소를 지나치고 잊는 것뿐.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이런 감정들에 무뎌지고 그 현실에 적응하는 것이 어른이 된다고도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이런 감정을 그 뜨거운 느낌에 아둔해지기 싫다. 그런 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면 나는 영원히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012

특별한 사람들 : 여행의 원동력

필리핀의 한 작은 마을에서 우리는 해외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주변 환경 청소와 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해 재능기부로 한글과 태권도를 가르쳤다. 아이들과 하는 시간들은 물론 즐거웠다. 하지만 더 좋았던 것은 그곳의 주변 환경이었다. 어떤 날은 정전이 되어 저녁엔 촛불을 켜고 밥을 먹기도 했다. 하루 종일 선풍기도 사용하지 못했고 단수가 지속되어서 빗물로 씻으며 생활했다. 당연히도 와이파이는 물론 핸드폰 전파도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즐거웠고 정말 설레는 나날들이었다.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비록 내가 소극적이어서 사람들과 쉽게 다가가지 못해도, 그들은 나를 이해해주었다. 또한 나도 그들을 이해했다. 유별나고 특별한 사람들의 봉사활동이었다. 우리들은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낮이든 밤이든 그저 하염없이 이야기를 했다. 그곳에는 많은 이야기와 상처들이 있었다. 즐거운 이야기는 잠시뿐 분위기 때문인지 주변 환경 때문인지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풀었다. 그로 인해 나는 그들의 행동과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여행 내내 정말 기묘하고 신비로운 느낌이 계속됐다.

 

뜬금없지만 TV에서 우연히 본 드라마의 대사가 떠오른다.

"하자가 아니라 상처라고 해야죠. 그리고 그 상처는 나한테든 당신한테든 있는거구요"

우리는 상처를 이해하고 한 '인간'으로서 대했다. 그저 하는 행동이 특이해 이상한 취급을 받는다거나 제시하는 의견에 대한 날이 선 비난이나 비판도 없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바는 일시적인 만남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 시간으로 인해 안정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까이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들은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해결책을 찾지 못해도 어쩔 때에는 들어주고 공감만 해주어도 도움이 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2년 전의 기억이고 정신없었던 여행이라 미화가 전혀 되지 않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또한 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 여행이 작은 유리병에 적응이 되어있던 나를 더 높게 뛰어오를 수 있게 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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